정부 압박에 과자,빵값 인하 저울질 ‘국제 밀값만큼 내려라’
정부 압박에 과자,빵값 인하 저울질 ‘국제 밀값만큼 내려라’
자영업자 연체율 1분기만 0.35%p 뛰어 8년내 최고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정부의 강한 요구에 업체들이 밀가루와 라면을 시작으로 줄줄이 가격 인하로 방향을 틀고 있다.
다른 가공식품에서도 도미노 가격 인하가 나타날 전망이다.
일단 빵·과자 제조 기업들은 밀가루 가격이 내렸지만 설탕·옥수수·대두 등
다른 원료 값은 크게 올라 현실적으로 당장 가격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압박을 감안하면 빵·과자는 물론 유제품·아이스크림·커피·음료 등 다른 식음료 기업들도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 인하에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26일 한국수입협회 국제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거래된 밀 선물 가격은 부셸당 7.39달러로 2021년 말 7.70달러에 비해 4% 하락했다.
국제 밀 가격은 지난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같은 해 3월 한때 부셸당 14.25달러로 두 배 수준까지 폭등했다가
7월 이후 다시 예전 가격 수준을 회복했다.
라면·과자·제빵 등 밀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들은
인상된 가격에 구매한 밀이 실제 원료로 투입되기 시작한 작년 8~10월 사이 줄지어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밀은 선물로 거래되기 때문에 제품 가격에 전가될 때까지 보통 6개월 정도 시차가 있다.
하지만 밀 값이 안정세를 찾은 지 1년 가까이 지난 뒤에도 라면·과자·제빵 기업들은 가격 인하를 주저하고 있다.
기업들이 원료 값 상승을 핑계로 제품 가격을 올릴 땐 빨리 움직이고, 내릴 땐 천천히 조정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제품가를 올린 상황에서 원료 값이 내리면서 일부 식품 기업들은 가시적인 실적 개선이 나타나고 있다.
농심은 올해 1분기 정부 압박에 국내 사업의 영업이익률이 6.2%로, 원료 값 폭등이 발생하기 이전인 2021년 영업이익률 3.1%에 비해 두 배 수준이다.
농심 관계자는 “이익률이 개선된 것은 단지 가격 인상 효과 때문만은 아니고 경기 불황으로 라면 소비가 늘면서 생산량 확대에 따라 효율성이 높아진 영향”이라며 “
밀가루와 함께 라면 제조의 주요 원료 가운데 하나인 감자전분 가격이 올 들어 60%가량 올라 가격 인하가 쉽지는 않다”고 해명했다.
라면 제조사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밀가루 가격이 내리면 가격 인하에 동참하겠다는 분위기다.
농심은 CJ제일제당에서 공급받는 밀가루 가격이 다음달부터 사실상 내려가면서 가장 먼저 가격 인하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제분 기업들은 통상 밀가루 구매가 많은 기업들에 구매액 대비 일정액을 구매장려금 명목으로 지급하고, 이를 늘리거나 줄이면서 국제 밀값 변동을 반영한다.
작년 2월 국제 밀 가격이 급등한 이후 CJ제일제당은 농심에 주던 구매장려금을 구매액 대비 10%가량 인하했는데,
최근 밀값이 하락함에 따라 지난해 줄인 구매장려금을 다시 인상하기로 한 것이다.
라면업체 입장에선 실질적으로 밀가루 공급 가격이 내린 것
밀가루 가격 인하로 라면 기업들이 가격 인하에 시동을 걸면서 빵, 과자 등 원재료에서 밀가루 비중이 높은 식료품의 가격 인하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파리바게뜨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 가운데 하나인 정통우유식빵은 지난해 초 2800원에서 현재 3400원까지 21.4%(600원)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주요 식품 제조 원료 가운데 라면과 빵의 원료 중 밀가루 비중은 사용량 기준 60% 이상이고,
원가 기준으론 30%대 중반이다.
과자는 원료에서 밀가루 비중이 사용량 기준 30% 수준이다. 한 과자 제조업체 관계자는 “밀가루만 제품의 원재료도 아니고 인건비,
에너지 비용 등 감안해야 할 요소가 매우 많아 당장 가격 인하를 결정하긴 어렵다”며 “다른 식품업체들도 대부분 비슷하다”고 말했다.
업계는 정부의 식품 물가 잡기 노력이 커피·유제품·아이스크림 등 전방위로 확산될 것으로 보고 긴장하고 있다.
커피 원료 가격도
작년 초 이후 20% 이상 하락했지만 대표적 커피 상품인 동서식품의 ‘맥심 오리지날 170g’ 리필 제품은 같은 시기 5680원에서 지난해 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6680원으로 17.6%(1000원)나 올랐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커피 국제 선물 가격은 인상되기 전인 2년 전에 비해서 아직도 30% 이상 높은 수준이며 선물 구매 특성상 구매한 후
국내 원재료 투입까지는 반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즉각적인 가격 반영이 어렵다”며 “환율이 아직까지는 다소 높은 수준인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업계 관계자는 “현재 농가에서 공급받는 원유 가격의 인상폭을 두고 협상이 진행 중이라 뭐라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면서도 “작년부터 원재료 가격이 워낙 많이 올라 무작정 인하 또는 동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슈거플레이션’이라고 불릴 정도로 설탕 값은 최근 1년 반 사이 30% 이상 오른 상태여서
원재료에서 설탕 비중이 높은 아이스크림·음료업계에선 가격 인하는커녕 추가 인상도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빙과업계 한 관계자는 “설탕 가격이 올해 들어 50% 이상 올랐다”면서 “가격 인하는 정말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