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도미노 ;회사채 시장의 자금경색을 시작으로 혼돈 속에 빠진 한국 경제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징후는 외환 위기급으로 치솟은 재고율이다.
미국·중국·유럽 등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에 따른 수요 위축으로 우리 경제 버팀목인 반도체를 중심으로 재고가 크게 늘었다.
대내외 여건 악화로 인한 글로벌 소비절벽과 수출 둔화가 현실화함에 따라 재고로 몸살을 앓는 기업들이
앞으로 감산에 나설 경우 가뜩이나 빠르게 얼어붙는 경기가 내년엔 더욱 혹독한 겨울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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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 재고율(출하량에 대한 재고 비율)은 지난해 8월 111.0%에서
올해 8월 124.0%까지 상승했다. 이에 따라 올 6월 124.2%로 120%대를 넘어선
제조업 재고율은 7월 124.5%에 이어 3개월 연속 120%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발생 직후 물류난 등으로 재고율이 일시적으로 올라갔던 2020년 5월(127.5%)을
제외하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영향이 컸던 1998년 9월(122.9%) 이후
재고율이 120%대로 치솟은 것은 최근 석 달이 처음이다.
재고는 기업들이 민감하게 느끼는 경기 선행지표다. 최근 재고율 급등은 기업들이
제품을 만들어도 국내외 시장에서 팔리지 않아 창고에 쌓이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에 따른 ‘펜트업 효과(억눌렸던 소비 폭발 현상)’가 사라진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 고물가, 주요국 통화 긴축으로 경기가 빠르게 식어가며
수요가 둔화하고, 수출 경기가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주요 업종별로 살펴보면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재고율이 올 8월 99.7%를
기록해 지난해 8월(47.5%) 보다 52.2%포인트 치솟았다. 반도체 재고율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위축된 수요 회복과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반도체 품귀 현상이
극심했던 지난해 1월 52.2%, 8월 47.5%까지 낮아졌다. 이후 올 1월 60.0%까지 상승했다가
경기 하강 우려로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100% 가까이 재고율이 치솟았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도 9월 수출입동향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재고율을 우려한 바 있다.
산업부는 “수요 약세, 재고 축적으로 메모리 가격이 하락하면서 반도체 수출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와 함께 재고율 가중치가 높은 다른 업종도 대부분 1년 전보다 재고율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화학제품업종은 지난해 8월 112.9%에서 올 8월 131.9%로 19.0% 뛰었고
1차금속은 102.5%에서 121.6%, 기계장비는 109.1%에서 114.4%로 각각 19.1%포인트, 5.3%포인트 올랐다.
자동차만 재고율이 170.6%에서 153.1%로 17.5%포인트 낮아졌다. 이 같은 재고 급증은 향후 기업의
수익성 악화, 생산·투자 감소로 이어져 얼어붙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경기 침체 도미노
실제 제조업 가동률지수는 8월 기준 75.2%로 2분기 평균(76.2%) 대비 1.0%포인트 하락했다.
문제는 내년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 속에 수출 실적이 빠르게 둔화,
제조업 경기가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부 통계에 따르면 월별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3월부터 두자릿수를 이어오다가
올해 6~9월 한자릿수로 떨어졌다. 이마저도 이달 1~20일엔 -5.5%를 기록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통계청 경기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8월 99.3을 기록해 전월 대비 0.2포인트 낮아졌다.
앞으로 경기가 급강하하면 ‘전 세계 수요 둔화→재고 증가→기업 수익성 악화→
생산 및 투자 감소→경기 침체’의 악순환이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각국 중앙은행의 급격한 금리인상 기조도 소비 절벽을 가속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