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범위 넓히면 대기업 직원만 싱글벙글
통상임금 범위 넓히면 대기업 직원만 싱글벙글
급전 필요해 청약통장 깼는데 소득공제 못 받는 금액이 무려
대법원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정기상여금’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라는 취지의 판단을 내놓으면서 산업계가 큰 혼란에 빠졌다.
이번 판결로 그동안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았던 금액까지 인정하게 되면 연간 수조 원에 달하는 추가 인건비 지출이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화생명보험 전현직 근로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지급 조건은 무효”라며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또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서도 “최소근무일수 조건은 무효”라며 역시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앞으로 정기상여금에 ‘상여금 지급일 현재 재직자에게만 지급된다’ ‘기준기간 내 15일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 대해서만
상여금을 지급한다’와 같은 조건이 달려 있는 경우라도 모두 통상임금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재직자 조건이나 최소근무일수 조건이 붙은 상여금에 대해 통상임금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석해왔다.
2013년 11월 대법원이 갑을오토텍 노조가 제기한 소송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통상임금’의 일반적
기준으로 제시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동시에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날 대법원 결정으로 산업계는 대폭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특히 한화생명보험 노조가 제기한 소송의 쟁점인 재직자 지급 조건은 많은 기업이 동일한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한화생명 측은 “법원의 의견을 존중하고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재직자 지급 요건 무효 결정만으로도 연간 6조7899억원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총은 “이 액수는 법리 변경으로 영향을 받는 기업들의 1년치 당기순이익 중 14.7%에 달한다”며
“최대 3년치 소급분을 일시에 지급해야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영향을 받는 기업 전체 당기순이익의 44.2%에 달하는 규모”라고 덧붙였다.
근무일수 기준에 따른 정기상여금을 지급하고 있는 현대차도 매년 수백억 원의 인건비를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종업원 급여에 투입하는 비용은 매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20년 연간 9000억원가량이던 종업원 급여비용은 지난해 1조 2000억원으로 늘었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21년 5%에서 2022년 10.6%, 2023년에는 13.5%로 높아졌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회사의 비용 중 가장 부담이 큰 게 노동비용”이라며
“근로자 고령화로 생산성은 떨어지고 임금총액은 높아지는데 추가 비용 부담이 생겼으니 현대차로서는 골치가 아플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기아,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수십여 개 계열사도 앞으로 같은 기준으로 통상임금을 계산하게 되면서
현대차그룹 전체가 짊어질 인건비 추가 부담액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구체적인 인건비 상승분은 변수가 많아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면서
“판결문을 송달받는 대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개별 회사들 인건비가 오르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재계는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경우 정기상여금 비중이 높고 초과근로가 많은
대기업 근로자들이 임금 증가 혜택을 더 많이 받게 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대법원이 불과 11년 만에 스스로 만든 법리를 변경했다는 점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산업 현장의 법적 안정성이 훼손됨은 물론이고 노사 관계에서도 소송 남발을 비롯한 새로운 혼란이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