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반도체 패권전쟁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는 현 위치에 안주한 사이 미중 패권 경쟁과 주요 경쟁국들의 반도체 지원법 등은 국내 반도체 업계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구조상 다수의 반도체 원천 기술을 보유한 미국과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의 40%를 차지하는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노선을 정하기도 어려워 ‘사면초가’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누구보다 미국은 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의회는 지난 7월 ‘반도체와 과학법’을 통과시켰다.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미국의 국가 종합 과학기술 전략을 담은 법이다.
이 법에서 미국은 2800억달러(약 370조원)를 반도체 산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미국은 지난 3월 한국·일본·대만 정부에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Chip) 4 동맹’
결성을 제안하는 등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미국의 제재에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거세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 제재가 시작된 이후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발표한 14차 5개년 계획(2021~2025)에서도 반도체는 7대 핵심 육성 기술 중 하나로 꼽혔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착착 진행 중이다.
EU도 올해 2월 ‘유럽 반도체법’을 발의, 2030년까지 민관 투자를 통해 450억유로(약 62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세계 첨단 반도체 생산에서 EU 비중을 현재의 9%에서 최소 20% 수준으로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각성한 일본의 움직임도 주목받고 있다. 한때 50% 이상 점유율로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일본은 이제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반도체 산업 부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거세지는 반도체 패권전쟁
글로벌 각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는 가운데 향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며 메모리 반도체 1위 국가인 우리나라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는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산업연구원(KIET)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반도체 산업의 종합 경쟁력을 분석한 결과
미국(96)이 가장 높고 대만(79), 일본(78), 중국(74), 한국(71), EU(66)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87)에서는 높은 경쟁력을 평가받았으나 시스템반도체(63)는
비교 대상국 중 최하위로 평가됐으며, 종합 평가에서도 6개 조사 대상국 중 5위에 그쳤다.
2020년 조사와 비교하면 1년 만에 우리나라와 중국의 순위가 뒤바뀌었다.
2020년 5개 국가 대상 조사에서는 미국(93.4)이 1위였고, 일본(78.4), 대만(75.1), 한국(68.6), 중국(64.3) 순이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각국 정부의 지원 정책과 주요 반도체 기업의 투자 계획 등을
종합하면 대략 2025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공급망이 재편되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위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