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운 뗀 연준 파월은 언제 펀치볼을 가져올까
금리인하 운 뗀 연준 파월은 언제 펀치볼을 가져올까
마트 갈때마다 손발이 떨려 미친 물가 내년엔 한풀 꺾인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파티가 무르익을 때 펀치볼을 치우는 것이다.’
1951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장을 지냈던 월리엄 마틴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펀치볼’은 과일 칵테일을 담는 그릇으로 미국 파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다.
‘펀치볼을 치운다’는 경제적 의미는 중앙은행이 경기가 너무 과열되기 전에 금리를 올려 과열을 막는다는 의미다.
파티의 흥을 깨는데 좋아할 사람은 없다.
이런 역할 때문에 중앙은행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산다.
경기가 뜨거워 일자리가 넘치고 임금이 올라가는데 금리를 올려 경기에 찬물을 끼얹으면 주변의 눈총이 따가워진다.
그렇다고 경기과열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경제에 거품이 생기고 이 거품이 터질 때 경제는 훨씬 더 큰 충격을 받는다.
역설적이지만 중앙은행이 펀치볼을 가져올 때도 있다.
경기가 침체 조짐을 보이면 이때는 금리를 내려 경기부양에 나선다. 2024년에는 전 세계 중앙은행에 펀치볼을 갖고 오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동안 물가를 잡기위해 금리를 계속 올려왔던 각국의 중앙은행은 경기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염려가 커지자 이제는 금리를 내려 경기가 급강하하는 것을 막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계의 관심은 단연 미국에 집중된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다른 나라들도 잇따라 금리를 내릴 태세다.
금리를 내리는 정책은 파티에 펀치볼을 가져오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다.
환영 받을 만한 정책은 하루라도 빨리하는 것이 좋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시장에서 연일 미국 금리인하론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펀치볼을 아무 때나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과연 언제 펀치볼을 가져올 것인가.
제롬파월 의장은 2023년 12월 마지막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동결 결정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하를 고려하는 상황에 와 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또 “2024년 경기침체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더 나아가 “금리인하가 오늘 회의 주제였다”고 덧붙였다. 연준이 발표하는 성명서도 바뀌었다.
성명서 서두에 경제성장이 둔화됐고 인플레이션은 완화됐다고 명시했다. 과거 성명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문구다.
연준 위원들이 작성하는 점도표에는 2024년 말 기준금리 수준을 4.6%로 예상하는 사람이 가장 많아 2024년 중 3차례 정도 0.25%포인트씩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줬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미국이 2024년에 금리를 내리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시점이다. 시장에서는 2024년 3월 금리인하설부터 연말 인하설까지 다양하다.
경제를 전망하거나 투자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필요하다. 이런 시점에서 과거의 데이타는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 부양에 나선 적은 지금까지 5번 정도 있었다.
미국 연준의 금리 정책은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이라는 두 가지를 목표로 한다.
이와 관련한 지표를 살펴보면 연준이 어떤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단행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먼저 1989년 5월 미국 연준 기준금리는 연9.8%까지 오른 후 떨어졌다.
당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를 넘나들었다. 기대인플레이션율도 4%대였다.
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연준은 금리를 내리는 결정을 했다. 실업률이 문제였다.
당시 실업률은 5%대 초반을 기록했다. 실업과 관련한 다른 지표인 월간 비농업일자리수 증가폭은 1989년 초만 해도
28만 명대를 기록했지만 금리를 내릴 당시에는 12만2000명까지 떨어졌다.
금리 인하 결정을 한 후인 1989년7월 비농업일자라수 증가폭은 4만 명대에 불과했다.
국내총생산(GDP)성장률(전기 대비 연율)은 1989년 2분기 7.6%에서 3분기는 6%, 4분기는 3.7%로 계속 떨어졌다.
한 마디로 물가는 높았지만 경기가 침체 조짐을 보이고 고용환경이 크게 악화되자 연준은 금리 인하 카드를 꺼냈다.
연준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다음 연준이 펀치볼을 가져온 시점은 1995년이다.